“누가 네오 아방가르드를 두려워 하는가?”
Hal Foster의 ‘실재의 귀환’ 中 “누가 네오 아방가르드를 두려워 하는가?”에 대한 개괄
문채원
‘실재의 귀환’은 7장으로 구성된 단행본의 이름이기도, 그 중 5장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는 미국의 미술사가이자 미술평론가인 할 포스터(Hal Foster)의 글이다. 그는 재현에 대한 포스트모던의 관심으로부터 실재에 대한 동시대의 관심으로의 특정한 변화를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실재’는 두 가지 의미이다. 첫 번째는 일상적 의미로, 사회적 현실을 뜻하며 두번째는 정신분석학적 의미로, 외상적 현실을 뜻한다. 책에서는 실재의 의미 재정립을 기반으로 ‘네오-아방가르드’ 개념과 ‘포스트모더니즘’개념을 재고찰한다. 포스터에 의해 이것들은 가장 의미심장한 미술 밎 비평의 두 모델이라 상정되었다. 비평의 모델들에서 일어난 전환과 역사적 실천들의 복귀 사이의 관계는 이를 이 책의 중심 키워드인 ‘시간성’과 연결짓는다. 미술 및 이론의 특정한 계보들은 변형되며 지속된다. 중요한 것은 비평의 모델들에서 일어난 전환과 역사적 실천들의 복귀 사이의 관계다.
“누가 네오 아방가르드를 두려워 하는가?”
본 소고는 <실재의 귀환>의 제 1장 “누가 네오 아방가르드를 두려워 하는가?”의 핵심이 되는 문장을 임의로 상정하고, 그 의미를 종합하여 풀어나간다. 그렇게함으로써 <실재의 귀환>에서 제 1장에서 7장까지 이어지는 할 포스터가 주창하는 미술과 이론, 비평에서의 시간성에 대해 독해할 아이디어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체성의 경우와 유사하게,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도 미리-당김protension과 다시-당김retension의 지속적인 과정, 예상된 미래들과 재구성된 과거들 간의 복잡한 이어달리기로서 구성된다는 것-
간단히 말해,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는 지연된 작용 속에서 구성되며, 이 지연된 작용은 이전과 이후, 원인과 결과, 기원과 반복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모조리 뒤엎어버린다는 것이다.”
포스터는 ‘지연된 작용’에 대한 고전적 논의가 ‘구성되기constituted’보다 ‘이해된다comprehended’고 말했지만, 그러나 이 두 과정은 겹쳐있다. 이는 아방가르드 미술가-비평가가 분석자이면서 동시에 피분석자인 위치를 차지할 때의 일이다. 이해되는것과 구성되는 것 사이에서 ‘미끄러지는’ 즉 지연되는 작용에서의 외상적 장면은 애매하다. 이로부터 도출되는 물음은, 외상적 장면이 현실/환상/분석적으로 구성된 것 사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것이다. 포스터는 자신의 모델에 따른 이러한 지연이 다른 문화적 시-공간들을 가로지르는 다른 연기delay들과 차이들을 포괄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와 관계없이 이전과 이후, 원인과 결과, 기원과 반복의 도식은 지연된 작용 개념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북미와 서유럽에 넘쳐나는 네오와 포스트-에서는 반복과 단절이 무수하다. 반복과 단절은 곧 복귀인데, 복귀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발생한다. 전후 미술에서 반복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네오-아방가르드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네오-아방가르드란 1950년대와 60년대 북미와 서유럽 미술가들을 느슨하게 묶어 이르는 것이며, 이들은 1910-20년대 아방가르드를 ‘재활용’한다. 이러한 복귀들의 양상은 동일한 시기 발현되었던 철학적 복귀를 살펴봄으로써 비교될 수 있다. 미셸 푸코가 말했듯,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복귀는 담론의 구조가 핵심이다.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의미하는가- 그리고 의미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어떻게 변형시켰는가. 라는 물음들은 각각 담론에 결정적인 ‘구성적 생략’에 초점을 맞춘다. 위와 같은 동일한 물음이 미술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복귀=역사적으로 초점이 분명하고 이론적으로 엄밀한 복귀’가 전후미술에서도 일어나는가?
포스터에 의하면,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후미술의 복귀 방식은 어떠한가? 1960년대의 미술에서 일어난 복귀가 동일한 시기의 마르크스나 프로이트 혹은 니체에 대한 이론적 독해만큼 급진적인지 아닌지는 결정될 수 없다. 단지 분명한 것은, 이러한 복귀들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 대해서도 근본적이라는 점이다. 네오-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더니즘은 복귀를 통해 돌파해나간다. 하지만 이 돌파는 총체적인 것은 아니며,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인식론적 단절 개념을 수정해야 한다. 여기서도 ‘지연된 작용’ 개념이 유효한데, 왜냐면 포스트모더니티를 알리는 신호가 된 담론들과 실천들은 모더니티의 기본적인 실천들이나 담론들과 단절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들과의 사후적인 관계 속에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아방가르드 역시 과거로 후퇴하면서 또한 현재의 혁신적인 미술에 의해 재정립되어 미래로부터 복귀하고 있다고 반문한다. 따라서 미술 및 이론에서는 통시적 (또는 역사적) 축과 공시적(또는 사회적) 축이 비판적으로 대등하게 놓여야 한다. 이러한 당위를 실천하는 것이 네오-아방가르드의 장점이다.
모더니티와 아방가르드의 복귀들은 왜 그때 일어났는가? 라는 역사적 질문, 그리고 이 두 복귀는 출현의 계기와 재출현의 계기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제시하는가? 라는 시간성, 서사성에 대한 질문은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를 확연히 구분하는 지점을 만든다. 네오-아방가르드는 미술 제도가 그 자체로 포착되도록 하며 그것에 대해 특정적이고 해체적이며 창조적인 분석을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