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작가론

국제갤러리 부산, 김홍석 개인전 <작은 사람들>

권홍은 2020. 9. 20. 14:57

전시장은 좁고, 수직을 이룬 풍선들이 공간을 메운다. 모든 풍선 수직은 자연 상태에서 막 가져온 듯한 돌 위에서 꼿꼿하게 기립하고 있다. 다양한 크기와 색으로 이루어진 풍선들은 둥근 표면을 서로 맞대고 있는데다 울퉁불퉁한 바위의 위에 올려져 있어 위태로워 보이지만 꽤 견고하게 느껴진다. 관람객들은 일자의 위태로운 형상이 주는 직관적인 감상과는 다른, 견고하고 단단한 느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도중 이 풍선들은 우리가 아는 보통의 풍선, 고무로 만들어진 가볍고 이리저리 튀는 풍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아차린다. 고무 재질 대신 다른 무언가의 단단하고, 서로 접착이 용이한 물질로 만들어진 이 풍선들의 재료적인 속성은 오히려 멀리서 바라볼 때 더욱 잘 전달된다. 

 

풍선을 이루는 것은 청동이다. 고무와 달리 예상할 수 없는 곳으로 튀어오르지도 않고, 쉽게 터지지도 않으며, 모양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 인간이 '기념비'라는 것을 고안해내서 만들어 세우기로 결심을 한 이래, 견고함과 불변성을 지닌 청동은 기념비의 목적과 맞아떨어져 주요 재료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기념비, 혹은 기념비적 형상은 직립하는 수직의 형태와 단단한 물질적 속성 때문에 종종 남성적이고, 폭력적이고, 우월적인 상징물로서 여겨졌다. 브랑쿠시의 <끝없는 기둥>, 칼 안드레의 <지렛대>  <등가> 시리즈에서 일직선으로 뻗은 벽돌과 바위, 청동은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권위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처럼 작품에 쓰이는 재료는 곧 메세지다. 김홍석은 이 점에 주목하면서도 그것을 비틀어 표현했다. 견고함, 불변성, 영원, 지속성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풍선들은 청동으로 제작되어 첫번째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다. 이어붙인 풍선들을 아래에서 바치는 바위는 전통적인 모뉴먼트나 조각에서 흔히 사용되는 좌대를 연상시킨다. 수직의 형상도 그렇다. 그러나 실제로 모뉴먼트를 이루는 것은 기존의 권위적인 조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알록달록한 일상의 풍선들이다. 관람객들은 여기서 숭고하고 우아한 기념비와, 어디서든 쉽게 보고 만질 수 있는 풍선 사이에서 한번 더 괴리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이 낯선 덩어리가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풍선(청동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이 사람의 숨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청동으로 가공된 풍선들은 사람의 숨을 기념비화한다. 바람이 새어나가 곧 오그라들 운명에 처한 풍선을 청동으로 제작해 숨은 더이상 일시적이지 않고, 영구히 보존될 수 있는 기념비적인 대상으로 거듭났다.낯선 아이러니로 가득한 이 형상을 관람객은 숨을 놓지 않은 생동성의 생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그 자체가 기념비화된 현상을 바라보면서 재료나 속성, 형태에 귀속되지 않는 힘을 가진 '사람', 즉 본인들의 견고함을 느낀다. 재료는 여전히 근대적, 남성적, 권위적, 강박적이지만 더이상 그렇게 전달되지 않는 이유는, 이 청동 풍선들이 '작은 사람들' 처럼 호흡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홍석 <무제, 작은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