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택의 일탈의 미학과 <x>, 그리고 동시대성
이승택의 일탈의 미학과 〈X〉, 그리고 동시대성
B945015 오영채
작가 이승택의 작품관은, 그와 관련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용어들―‘반反형식’, ‘반反개념’, ‘비非조각’, ‘비非물질’ 등에서 예상해볼 수 있듯이, ‘반反’과 ‘비非’의 ‘일탈적’ 작품관으로 파악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승택은 무엇으로부터, 또 어떻게 일탈했을까요? 도대체 어떤 일탈이었길래 한때 국내에서 ‘예술계의 이단아’로 규정되기까지 했던 것일까요? 그의 일탈은 크게 3가지 국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서구의 조각을 부정하기(1955년-1971년), 2) 존재 개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1972년-1983년), 3) 예술과 삶의 경계를 무화無化하기 (1984년-1990년대 초).(이인범 2017)
서구의 조각을 부정하기(1955년-1971년)
이승택이 서구의 조각을 부정한다고 언급하기는 했습니다만, 여기서 우리는 그가 완전히 서구의 조각 개념에 등을 돌렸던 것은 아니라는 것에, 즉 결코 ‘서구의 조각’이라는 집합의 여집합―한국의 전통적인 예술, 혹은 동양의 수양적인 정신성에 기반한 전통 예술 등―만을 취하고자 하지 않았다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는 오히려 서구의 조각을 적극적으로 수용함과 동시에 그것을 점진적으로 부정해나감으로써, 끝내 새로운 잉여surplus, 제3의 것을 창출해내기에 이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글 전체의 주제와 관련해서도, 이 시기 동안 그가 만들어낸 작품들을 차례차례 살펴보면 제가 지금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의 작품 <환희>(도1)부터 <토르소>(도2), <무제>(도3), <바람놀이>(도4)까지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시나요?(이외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있지만, 그 변주의 흐름을 명확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들로 취사선택했습니다.) 이승택은 미국의 조각가 레오 아미노Leo Amino의 영향을 받아 제작한 <환희>를 기점으로, <토르소>에서는 잘 조각된 인체에 철사를 휘감아 전통적인 서구의 조각 체계에 흠집을 내고, <무제>에서는 일상적인 소재들―항아리, 옹기 등ㅡ을 활용해서 작품을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좌대 없이 공중에 매달아 놓음으로써 서구의 조각 작품을 다루는 표준적인 태도에서도 벗어납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움직임은 알베르토 자코 메티Alberto Giacometti의 작품을 통해 경험한 미학적 충격과 더불어 ‘형체 없는 조각’ 개념으로까지 이어지게 되고, <바람놀이>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특히 <바람놀이>에서 확인되는 자연―대지, 공기 등―의 예술 영역으로의 진입 내지 진출은 놀랍게도 서구의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와 같은 (포스트) 미니멀리스트들보다 앞섰습니다.(정연심 2016, 156) 이것이 제가 앞서 언급한 이승택이 ‘새로운 잉여’, ‘제3의 것’을 창출해냈다는 것에 대한 논거가 될 수 있겠습니다.
존재 개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1972년-1983년)
이어서 이승택은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합니다. 무엇과 함께? 바로 ‘줄‘과 함께. 그렇다면 ‘그는 어떤 존재에 대해, 어떤 의문을 제기한 것일까’, ‘왜 줄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듭니다. 그에게 의문의 대상은 “조선백자―1960, 70년대 국민국가 형성과정에서 국수주의적인 물결과 문화적 정체성 담론을 떠받치는 핵심적 항목 중 하나였던―나, 문명적 두께를 지시하는 옛 고서(古書), 지배담론 생산의 보루였던 책자나 잡지들, (…), 화폐 등”(이인범 2017, 260)이었습니다. 여기서 이승택의 의문이라 함은 데카르트적인 방법적 회의로 이해가 됩니다. 즉 ‘너는 진실로 단지 백자일 뿐인 것이냐’, ‘너는 그저 지혜를 담고 있는 낡은 책일 뿐인 것이냐’, ‘너는 단지 물건의 교환을 용이하게 하는 종잇장에 불과한 것이냐’ 등의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의문의 그 깊은 기저에는, 이승택의 참여적인 정치적 성격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임과 동시에 비판적인 자문 내지 성찰―아마도 바로 앞에서 언급된 국수주의적인 물결, 혹은 대중의 지적 기반으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상식에 은밀하게 가해진 지배 계층의 개입 내지 조작, 그리고 자본의 무력 등에 대해 고민해보는 방식을 통한―이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승택은 이러한 대상들을 줄로 묶습니다. 우리가 ‘줄’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표상은 ‘이어짐’, ‘결합’, ‘연대’ 등의 표상일 것입니다. 그것의 물리적 형태 내지 기능과 더불어 우리가 살아오면서 숱하게 접하고 들은 경험들, 이야기들ㅡ줄다리기, 손과 손을 잇는 붉은 실 등ㅡ이 그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승택의 줄은 이 같은 문화인류학적인, 표준적인 의미의 줄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그의 작품 <백자>(도5)를 보면 줄에 감긴 백자는 그 표면의 눌림으로 인해 전체적인 균형이 무너지고, 온전치 못한 형상을 갖추게 됨에 따라 보는 이로 하여금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의미 및 해석의 차원에서는, 그의 줄은 마치 대상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즉 대상을 해체하고 뜯어보기 위해 조금씩 숨통을 조여 오는 독사와 같이 작용하면서 우리에게 앞서 언급한 방법적 회의의 장을 열어주는 것만 같습니다. 요컨대 이승택의 줄은 표준적이고 일반적인 ‘합침’의 오브제가 아니라, 묶지만 해체하는 역설적인 오브제, 또 그 역설을 드러내는 ‘방법적이고 언어적’인 오브제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술과 삶의 경계를 무화無化하기 (1984년-1990년대 초)
예술과 삶의 경계를 무화無化하기 위한 실험을 통해서 이승택은 그의 일탈의 종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는 이 시기에 ‘비非조각’ 개념을 키워드로 활동합니다. 그에게 ‘비非조각’이란 “‘이전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반개념’과 ‘기존의 조각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재료의 실험’으로 구체화”(이인범 2017, 263)되지요. 그렇다면 그의 비조각 개념과 더불어서 예술과 삶의 경계를 없앤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이 시기에 제작된 그의 작품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Painting Water>(도6), <무제>(도7)는 더 이상 기존의 조각이 아닌 것으로서, 화이트 큐브에서 벗어나 우리 삶의 근원인 자연과 한 데 녹아 있는 모습입니다. 이 두 작품뿐만 아니라 <무제-마이산에서>, <기와 입은 대지> 등 이 시기의 그의 여러 작품에서 예술과 우리 삶의 현장 사이의 경계는 아주 모호해집니다. 특히 이승택은 끊임없이 자신을 소모하며 빛과 에너지를 방출하는 불火을 활용한 여러 ‘분신행위의 예술’을 통해서 인간의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무화하고, 그 인간 존재의 연장선 상에 놓인 우리 사회의 문제ㅡ환경, 섹슈얼리티, 분단ㅡ에 개입하기도 합니다.(이인범 2017, 264)
〈X〉와 동시대성
지금까지 ‘예술계의 이단아’, 이승택의 세 가지 일탈을 살펴봤습니다. 우리가 그의 일탈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그가 분리-대립 관계에 놓인 이항異項들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서구의 조각과 말하자면 우리의 조각, 모든 존재와 비존재, 삶과 예술. 그는 이러한 분리-대립된 영역의 사이에서 결코 어느 한쪽의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는 그 갈라진 틈, 분열, 아노미적 영역에서 그에게 주어진 이항들을 동시에 거부하며 실험을 이어나갔고, 끝내 그 어느 쪽에도 포섭되지 않는 제3의 것을 창출해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교훈이 드러납니다. 주체의 형성에 구성적인 소외, 달리 말하자면 주체적 자살을 통해 기존에 자리하고 있던 정체성에 포섭되지 않고, 새로운 보편성 〈X〉를 향해 전진하는 것입니다. 이 기호 〈X〉는 급진적인 흑인 인권 운동가였던 말콤 엑스Malcolm X, 그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그는 1925년에 태어나 1965년 암살을 당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다양한 흑인 인권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 40여년 정도의 삶의 기간 동안 그가 미국 내 백인 사회로부터 얼마나 부당하고 잔인한 폭력과 차별을 당해왔을지 우리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그가 운동을 이어나가면서 쟁취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백인 사회로의 편입은 어불성설이겠지요. 그렇다면 전통적 아프리카 흑인 사회로의 회귀를 염원했을까요?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그는 백인과 흑인이라는 양극단의 정체성 모두를 거부하며 이 대척점들 사이의 틈, 분열의 현장에 서서 자신의 새로운 보편성 〈X〉를 획득하고자 분투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이름에 담겨 있는 ‘X’가 시사하는 바입니다.(실제로 그는 이슬람의 이데올로기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무슬림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이와 동일한 논리는 LGBTQ+ 운동과 관련해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 ‘+’는 바로 앞서 설명한 ‘X’와 똑같은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는, 말하자면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규정한, 또 계속해서 규정하고 있는 35개 이상의 젠더 정체성을 담고 있는 의미로 이해돼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러한 정체성들에 포섭되려 하지 않고, “나는 왜 우리 사회가 정해준 정체성에 속해야만 하는 것이냐”는 히스테리컬한 질문을 던지며 자신 스스로가, 지젝의 말을 빌리자면, “+ 그 자체가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기세를 이어 곧바로 정치적으로 결론을 내버린다면 아주 뜬금없겠죠? 〈X〉와 함께 동시대성에 관한 논의로 들어가겠습니다. 동시대성에 관한 담론이 여러 가지 이유로 공허하다든가, 부유하고 있다든가 하는 문제 제기는 이제 꽤 익숙합니다. 사실 발전 속도의 가속성이라는 특성에 힙입어 터무니없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기술과 더불어서, 매일같이 급변하고 있는 우리 사회입니다. 예술의 영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점점 더 광범위해지면서 온갖 것들이 그 개념 안에 포섭되고 있고, 사용되는 매체들도 다양해지고, 여러 측면에서 종잡을 수 없는 대상이 되어버렸지요. 그래서 이 같은 역동적인 상황 속에서 동시대성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겠다는 것은 어쩌면 무리한 계획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특정 시대의 예술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예술과 관련된 정치, 경제, 역사, 사회 등 학계의 여러 분야로부터 구축된 데이터 베이스를 기반으로 예술작품의 어느 정도 일관된 경향성을 발견해내야 하는데, 광포한 자본주의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있는 우리 사회, 아니 인류의 전례 없는 역동성과 유동성은 탄탄한 데이터 베이스 구축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X〉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풍부한 담론과 곤궁한 담론의 사이, 그 분열되는 지점에 서서 공허함과 부유함, 불안정함 자체를 우리 시대의 동시대성 〈X〉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토대 위에서 우리는 동시대성에 대한 담론의 형성과 비평에 목맬 필요가 없겠지요. 따라서 남는 것은 우리 자신뿐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X〉, ‘X’, ‘+’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 자신에게 자유로운 감상의 지평이 다시 한 번 새롭게 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다소 무리일까요? 아무튼 희망을 가져봅니다.
도판
〈환희〉(도1), 〈토르소〉(도2), 〈무제〉(도3)은 도저히 이미지를 찾을 수가 없어서, 해당 작품 이미지가 있는 논문(첨부된 pdf)의 페이지 수를 기재해놓도록 하겠습니다. 〈환희〉(도1): 이인범, 「이승택 작품 연구: ‘비조각’ 개념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회』, Vol.-No. 49, 2017, p. 256 〈토르소〉(도2): 같은 글, p. 257 〈무제〉(도3): 같은 글, p. 257
참고문헌
이인범, 「이승택 작품 연구: ‘비조각’ 개념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회』, Vol.-No. 49, 2017
정연심, 『한국 동시대 미술을 말하다』, 서울: 에이엔씨,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