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작가론

기이한 추상과 예술가들의 도전

hoseungSa 2020. 4. 15. 23:55

 본 글은 1960년대 이후 여성 미술가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기이한 추상과 회화의 조각적 확장 개념을 다루며 관련 단행본 및 논문을 참고해 작성했다포스트미니멀리즘 이후의 상황 속에서 새로운 작업 방식을 보여준 대표적인 여성 미술가들의 활동을 조명하고 그들이 부딪힌 한계를 살펴보며 그 의의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60년대 미술사적 흐름-포스트미니멀리즘

 1960년대에는 오늘날 설치 미술의 원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시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동향은 주로 뉴욕 소재의 미술관과 관객의 참여를 유도했던 미니멀리즘 전시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후 미니멀리즘에 반하는 프로세스 아트와 개념미술이 등장하게 되었고 『아트포럼』지의 비평가가 이를 포스트-미니멀리즘으로 지칭함에 따라 새로운 미술 흐름이 나타나게 되었다. 미술사적 흐름에서 볼 때 1960년 말을 기점으로 회화나 조각이 캔버스 틀의 외적 공간으로 확장되어 나아가는 과정과 작용이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바로 리 본테큐(Lee Bontecou)작품에서 출발한다.

 

 

기이한 추상과 예술가들-공존과 치유의 예술

 1965, 루시 리파드는 남성들 위주의 미니멀리즘에 대항해 《기이한 추상(Eccentric Abstraction)》전을 기획하며 본테큐, 루이즈 부르주아, 에바 헤세 등을 기이한 추상을 주도했던 예술가로 분류했다.[1] 이듬해 피쉬바흐 갤러리(Fischbach Gallery)에서 열린 전시를 통해 부드러운 소재와 여성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미술가들을 뉴욕 화단에 소개하며, 엄숙하고 차가운 분위기의 미니멀리즘이 아닌, 에로틱한 포스트-미니멀리즘을 보여주었다.

 

< Untitled >, 1961

 이 흐름을 이끈 본테큐는 1960-70년대 주로 활동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으나 결혼과 함께 뉴욕 화단에서 사라진 여성미술가로, 회화를 조각적인 부조처럼 제작해 주변 공간으로 확장해 나감으로써 매체의 실험성을 탐색했다. 그는 금속 재료나 용접과 같이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요소를 작업에 사용하며 회화의 한계를 조각의 영역으로 변화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후기에는 철강과 같은 무거운 느낌의 재료에서 벗어나 가볍고 유동적인 느낌의 플라스틱, 에폭시 수지 등의 합성 재료를 혼합해 사용하면서 환경 친화론자로의 소신을 보여주는 작업을 보여주기도 했다.[2] 산업적이거나 일상적인 여러 오브제를 통해 공간의 확장을 넘어 그림 안의 시간과 프레임 밖의 시간을 지속시키는 매체로서 다뤄진 작업들은 곧 회화적 조각, 조각적 회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시간성, 공간성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선구자적인 인물이었고 이러한 작업들은 포스트미니멀리즘과 이후 설치미술이 태동하기까지의 가교 역할을 했다.

 

< Expanded Expansion>, 1969

 오늘날 선구적 페미니스트 미술가로 다뤄지는 에바 헤세는 라텍스나 섬유유리 같은 소재를 사용해 부드러운 조각이라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의 초창기 작업은 유화의 질감을 살린 터치를 강조하고 단순한 형태와 강렬한 표현성을 보여주며 이는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여성미술가가 가졌을 심리적 불안와 가정 안의 불편한 관계 등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후에 점차 회화에서 벗어나 조각과 설치 영역으로 작업을 확장했고 동시대 미술가들과 교류하며 오브제의 사물성과 물질성에 관심을 갖고 로버트 모리스의 반형태(anti-form)를 적극 수용했다.[3] 특히 신체 일부의 파편화된 형상을 부분-대상화하여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여성의 욕망과 주체성을 표현했다. 1972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그의 회고전이 열렸으며 이는 여성미술가로서는 처음 갖는 회고전이었다.

 

<The destruction of the father>, 1974

 위 작가들과 함께 기이한 추상작가로 분류되는 부르주아는 196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알려지며 부분-대상’, ‘파편화된 신체등의 조각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1970년대 뉴욕 화단에서 페미니즘적 이슈를 잘 다루는 미술가로 각인되며 여성미술가들과 함께 전시를 하기도 했다. 특히 기이하고 독특한 생물적인 형태를 강조해 남성 작가들이 보통 표현하지 않은 기괴하고 환영적이며 에로틱한 표현을 제시했다.

 

<아버지의 파괴>는 형태적으로는 상당히 그로테스크하고 공격적인 작품으로 가슴과 남근을 연상케 하는 오브제를 병치하여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축을 포함한다. 이는 과거 아버지의 바람으로 인해 벌어진 상황과 그에 대한 분노를 폭로한 것이었다. 본인의 트라우마를 반복적으로 다루면서 결국 치유에 이르는 듯한 양상을 보였다. 그는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으로 다루지 않고 한 작품 안에 젠더가 공존하는 모습을 표현하여 어떠한 요소도 우위를 지니지 않은 채 서로 보조하고 지탱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결국 그의 작업은 이분법적인 논리를 넘어서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그의 관심과 사랑을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오직 예술가로 서기

 이 작가들은 1960년대 후반 대두된 페미니즘의 흐름과 동시대의 여러 이슈를 타고 주목을 받으며 활동했다. 그러나 본테큐는 1972년 전시를 마지막으로 결혼과 함께 약 30년간 모습을 감췄고 헤세는 병으로 요절하는 등 대중의 기억 속에서 멀어졌다. 이들보다 일찍 활동을 시작한 부르주아 역시 1940년대 뉴욕으로 이주해 조각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다양한 매체와 재료를 통해 개방적인 작업을 이어갔으나 그녀의 존재는 당시 미술계의 저명한 학자였던 로버드 골드워터의 부인으로 알려졌을 뿐이었다.

 

이와 관련해 1971년 발표된 린다 노클린의 논문 「왜 위대한 여성 미술사는 없는가를 살펴보면 위대한 여성 미술가나 여성 천재가 없었던 이유에 대해 여성들의 능력이나 재능 때문이 아니라 교육 체제나 관습 등의 사회, 구조적인 체제 때문에 생산된다고 언급한다. 그는 백인남성을 주체적인 존재로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자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문제까지 함축한다고 말하며 백인남성이 구축한 미술사의 시각을 전체로 일반화한 미술사의 관계를 지적했다. 이는 당시 기이한 추상의 여성 작가들을 다룬 비평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그들의 작업을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바라본 시각들을 보여준다.[4]

 

<Do Women Have To Be Naked To Get Into the Met. Museum?>, 1989 [5]

 여성미술가에겐 작가 이전에 여성으로서 넘어야하는 장벽들이 있었다. 이들은 가부장제에서의 탈피, 교육의 기회, 예술계 진출의 어려움 등 사회의 불평등과 성차별적 인식과 싸워 미술사에 남을 수 있었다. 이들이 여성화가가 아닌, 오직 예술가로서 기억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사진출처

<Untitled>, 1961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81442

<Expanded Expansion>, 1969 https://www.guggenheim.org/artwork/1648 

<The destruction of the father>, 1974 https://www.artslant.com/la/articles/show/2711-in-focus-the-destruction-of-the-father-1974

<Do Women Have To Be Naked To Get Into the Met. Museum?>, 1989 https://www.tate.org.uk/art/artworks/guerrilla-girls-do-women-have-to-be-naked-to-get-into-the-met-museum-p78793

 

참고문헌

-정연심, 현대공간과 설치미술』, 에이엔씨, 2014


[1] 이 용어를 처음 쓴 리파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이한 추상은 감각적이고 활력적인 요소와 이와는 전혀 다른 죽음과 같은 어두운 요소를 함께 결합시킨다. 그리하여 구조적인 요소에 일종의 유머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모순은 기이한 추상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대조는 두 요소와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요소를 통해 서로 모순을 드러내기보다 보완을 형성한다. 그 결과, 형식적 중립성, 독특한 종류의 완전함을 이루어 마비상태를 야기한다.’

[2] 아상블라주(assemblage): 폐품이나 일용품을 비롯하여 여러 물체를 한데 모아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기법 및 그 작품.

[3] 로버트 모리슨이 1966년에 처음 사용한 용어로, 여기서 오브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비영구적이며, 불확정적인 과정, 우연성의 총체들로 존재한다.

[4] 1964년「-다다: 팝아트 비평(Neo-Dada: A Critique of Pop Art)」라는 글에서 에드워드 T, 켈리 (Edward T. Kelly)는 본테큐와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의 작품을 두고 정신 이상자의 작품이라 규정한 바 있다

[5] 1985년 뉴욕에서 결성된 익명의 여성 미술가 그룹게릴라 걸스가 뉴욕 시내버스 외벽에 내걸었던 광고 이미지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모던아트 섹션에 여성 작가는 5% 미만, 누드화의 85%는 여성임을 겨냥했다. 대표적인 여성의 누드화로 알려진 앵그르의 <오달리스크> 도상이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