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 마타-클락의 아나키텍처, anarchi-tecture? an-architecture?
1.
고든 마타-클락이1970년대에 결성하여 활동한 ‘아나키텍처’ 그룹은 건축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적인 도시 공간에 대한 비판을 이어나간다.
건축가 앤서니 비들러는 마타-클락이 창안해낸 개념anarchitecture의 'an'을 두가지 측면에서 해석한다. up, on, gain, back의 ana-가 접두사로 쓰인 것인지, '리더가 없는' 이라는 뜻인 anarchi 에서 차용한 무정부주의 anarchy와 architecture을 결합한 용어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1]전자는 여전히 공간을 중심으로 작업을 해나가는 작가의 건축적 면모를 드러내는 해석일 것이고, 후자는 기존의 예술 개념에 반하는 비판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마타-클락의 사상적 측면을 좀 더 강조하는 설명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마타-클락의 심리지리학과 상황주의 등을 기반으로 한 개념적인 작업, 그리고 비건축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환경으로 확장되는 기능이 결여된 구축물 작업, 건물 절단 작업을 미루어 보았을 때 비들러가 제시한 'ana'-architecture 보다는 without, lacking의 뜻을 가진 접두사 an을 사용한 an-architecture이 더욱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본문의 저자 또한 마타-클락의 비건축적인 발상을 꾸준히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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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평소 기존의 건축에 저항하는 작업을 통해 꾸준히 사회 전복적이고 혁명적인 메세지를 제안한 점을 고려했을 때, 권력의 부재를 뜻하는 anarchi의 의미를 중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분석이 현대에 들어와 우세하다.[2]마타-클락을 포함한 아나키텍처 그룹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생각이나 대안을 실제 건축으로 제안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이미 필요 이상의 건축들이 지어졌거나 지어지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대신 그들은 건축에 관련된 사진, 글 등 기록물들을 통해 건축이 만들어내는 공간성과 심리,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담론을 공유했다.
마타-클락의 '아나키'텍처 적인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프로젝트는 1974년에 진행된 <실재 재산:가짜 부동산> 일 것이다. 작가는 뉴욕 시정부가 광고했던 퀸즈와 스태튼 아일랜드에 위치한 접근 어려운15군데의 땅들을 싼 값에 사들였다. 이는 도시 구획 안에 구획을 나누는 과정에서 미세하게 남겨져 실질적으로 이용가치가 없는 땅들이었다. 시정부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토지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교환가치를 내세우며 경매를 유도했다.[3]마타-클락은 의도적으로 이 자투리 토지들을 매입함으로써 시정부의 자본주의적인 논리에 기인한 부조리한 행동을 비판했다. 이와 함께 작가는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지는 토지 소유권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애초에 개인에게 속해있지 않던 자연 상태의 땅들이 오직 매매와 투자의 대상으로만 여겨져 자본주의 논리 아래에서 그 가치가 결정되는 현실을 재고하게 만든다. 또한 실제로 사용하거나 거주할 수 없는 토지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교환가치 대상으로 제시하는 방식과 투자가치 대상으로 사들이는 역설을 통해 재산으로 분류된 사물의 무용성이라는 아이러니, 인간의 소유욕과 물질주의를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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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1. Anarchitecture: 비건축적인 건축공간'에서 마타-클락의 아나키텍처를 '아나키'적 제도권 비판의식을 전면에 내세우기(anarchi-tecture)보다는 비건축적인 건축이라는 개념(an-architecture)에 보다 초점을 맞춰 전개된다. 저자는1960년대 조각이 건축적인 구조와 스케일을 보여준 것을 넘어서 마타-클락은 물리적인 건축을 상황과 환경의 범주 영역으로 확장시켰다고 언급한다. 마타-클락이 새로운 형태의 미술을 접하게 된 계기는1969년 개최된 <대지미술전>을 통해서였는데, 월터 드 마리아, 로버트 스밋슨, 한스 하케 등이 참석한 이 전시에 마타-클락은 전시 설치를 도우며 직접 대지미술을 경험했다. 몇 개월 뒤 뉴욕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작가는 건축적이면서 비건축적인 포스트미니멀리즘의 맥락 안에 있는 대지미술을 통해 아나키텍처의 개념을 정립했다. 작가는 건축의 기능을 조롱하고 부조리하게 만들기 위한 의도로 비건축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서는 가변성, 이동성을 강조했다.
작가는 1973년까지 <푸드>라는 식당을 운영하며 건물과 건축에 대한 연구를 이어나갔다. 식당이자 예술가들의 대안공간이었던 '푸드'는 각종 이국적인 향료를 사용한 음식들을 액티비스트 작가들이 요리해 나눠먹는 공간이었는데, 먹는 행위 그 자체를 퍼포먼스로 인식해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이 주요 작업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본문에 나와있는 이 설명만으로는 <푸드>라는 프로젝트의 'an-architecture'적 면모를 온전히 파악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마타-클락은 이 작업으로 예술가들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고 의견을 자유로이 나눌 수 있는 사회적 소통공간을 제공해 해체된 공동체를 다시 형성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푸드>에는 본문의 저자가 강조한 '비건축적인 건축' 요소가 여실히 나타나있다. 작가는 식당의 벽과 문의 일부를 절단하여 <벽 샌드위치>라는 부차적인 작품을 제작했다.[4]벽과 문의 단면을 가로로 길게 잘라내 특정한 용도와 기능이 해체되고 불분명한 비건축적 요소를 강조하면서도, 여전히 공간으로 남겨둬 환경의 영역으로 여기게 한다. 이렇듯 약 3년에 걸쳐 진행된 <푸드> 프로젝트는 마타-클락의 기존 제도에 대한 비판의식과 공동체 회복에 대한 열망 뿐만 아니라 대지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비건축적 건축' 개념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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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저자는 아나키텍처에 대한 비들러의 이분법적인 용어 분석, 엄밀히 말하면 비들러가 설명한 anarchi-tecture와 필자가 해석한 an-architecture이라는 두 가지 고정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이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서의 아나키텍처를 제시한다. 저자는 아나키텍처를 '비건축적인 요소와 건축적인 요소를 동시에 포용하는 반정부적인 정치성을 겨냥'한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부재를 뜻하는 anarchi는 architecture앞에 붙어 건축의 부재, 즉 비건축 그 자체를 뜻하기도 하면서 자본주의, 재개발, 공동체의 해체 등 기존의 제도권을 비판하는 사상적인 측면까지 포괄한다.
19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건물 쪼개기 시리즈는 마타-클락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업이다. 작가는 획일적인 그리드 형태로 분리된 도시와 거주 공간, 더 나아가 공동체의 해체 이 모두는 자본주의적인 도시 개발 계획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마타-클락은 재개발의 대상이 되었던 건축물을 절단하고 해체하는 방식으로 획일적이고 폭력적인 도시 개발 계획의 문제점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였다. 작가는 1972년 뉴욕의 교외 지역인 브롱스의 가정집들을 선정해 벽, 문, 문지방 등을 무단으로 잘라냈다. 브롱스는 도시 근교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을 때 정부의 주택 정책 아래 크게 성장한 도시 중 하나인데, 이후 건물들이 낡아져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었지만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낙후된 채로 방치되어 있던 대표적인 교외 지역이었다.[5]본문에 따르면 브롱스 가정집들의 일부분을 절단하는 <브롱스 바닥>프로젝트는 '쓰레기'와 '빈민'의 이미지를 심리적으로 연상시키게 하는 불편한 작업이었다. 작가는 낙후된 건물들을 쪼개는 과정을 통해 이전에는 보지 못했거나 숨기고자 했던 새로운 건축적인 구조를 드러내고, 동시에 부조리한 사회적인 구조에 직면하게 했다.
이후 1974년에 진행된 <쪼개기>는 일방적인 도시 재개발의 불합리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표명한 작업이다. 벽, 문지방에서 그치지 않고 외벽까지도 통째로 반으로 가르는 파격성을 보여주었다.이 불안정한 형태는 보는 이들에게 불안함과 두려움을 야기시키며 그만큼 강력한 anti-government, anti-capitalism정신을 드러낸다. 이 작업에서 보이는 분리된 집의 형태는 1970년대의 미국적 삶의 몰락한 현상을 드러낸다고 평가받는다.[6]이 작업들은 모두 비건축적 형태와 주거의 기능이 결여된 공간, 즉 더이상 '건축'적이라고 불리기 어려운 구축물을 제시한다.
이렇듯 마타-클락이 주창한 anarchitecture란 개념은 기존의 사회, 정치 이념에 반발하고 전복하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이를 비건축적인 상황으로 구축하는 행위를 통해 자본주의적 도시에 새로운 대안을 내놓는 모든 과정을 통틀어 지칭한다. 유럽의 상황주의와 맥락을 같이 하는 마타-클락의 아나키텍처는 상황을 효과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대부분 이론적인 분석에서 그친 상황주의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각주
[1]비들러, 'architecture-to-be: notes on architecture in the work of Matta and Mordan Matta-Clark', p.69.
[2]이임수, '아나키텍처(Anarchitecture) · 안티젠트리피케이션(Anti-gentrification) : 1970-80년대 뉴욕 다운타운 도시빈민의 주거공간에 대한 미술의 대안적 모색= Anarchitecture and Anti-gentrificatio n: Artistic Practices on Homelessness and Urban Renewal in Downtown New York in the 19 70s and 1980s',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Vol.40 No.- (2014), p. 246.
[3]이한아름, '고든 마타-클락 작품 연구: 아나키텍처 작업을 통한 공동체 형성을 중심으로', 명지대학교 석사학위청구 논문(2020), pp.29-31.
[4]장다은, '고든 마타 클락의 '건축-자르기'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석사학위청구 논문 (2007), pp.59-60.
[5]이한아름, '고든 마타-클락 작품 연구: 아나키텍처 작업을 통한 공동체 형성을 중심으로', 명지대학교 석사학위청구 논문(2020), p.39.
[6]신효원, '고든 마타-클락의 장소-특정적 작업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청구 논문 (2008), p.31.
이미지 출처
http://manuelprados.net/2018-8-19-reality-properties-fake-estates-gordon-matta-clark/
Reality Properties: Fake Estates (Gordon Matta-Clark)
Starting in the summer of 1973, artist Gordon Matta-Clark purchased fifteen lots in the city of New York, fourteen in Queens and one in Staten Island. The specificity of these plots is to be tiny residual areas, often inaccessible parcels of land escaped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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