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미니멀리즘
1960년대, 주로 뉴욕의 미술관에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미니멀리즘 전시가 등장하였다. 미니멀리즘의 등장으로 조각에서는 관람자를 고려한 작품이 등장하였고, 미술가들은 작품을 둘러싼 환경과 상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60년대 미술에서 중요한 전시는 《기본적인 구조들(Primary Structures)》이다.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조각을 보여주었고 그러한 작업은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과 변혁을 보이는 것이었다. 당시 큐레이터는 관람자의 역할, 작품, 그리고 작품의 주변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수록했다. 이 전시를 기점으로 미국의 학자들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예술론에 대항하는 글을 출판했다. 《기본적인 구조들》이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 시기에는 다양한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예시로 로버트 모리스의 <무제>가 있다. 모리스는 같은 크기의 L자 게슈탈트를 서로 다른 형태로 배치하여 <무제>를 설치하였다. 관람자는 전시실 내를 돌아다니면서 똑같은 작품의 구조가 배치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체험한다. 모리스는 이를 통해서 오브제는 주어진 공간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공간 설정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전체 이미지를 파노라마처럼 한순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가 시간을 갖고 여러 시각에서 살펴보도록 유도하는 방식은 미술계의 새로운 변화였다. 이는 미술에서의 시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관람자가 모리스의 작품을 보는 방식은 ‘공간예술’인 미술이 시간성을 포함하는 것을 뜻했다. 관람자가 작품을 본다는 것은 그 시각 경험을 넘어 작품이 영향을 미치는 장 전체를 지각한다는 것이다. 관람자는 자신의 감각을 통해 작품의 장과 자신의 신체 전체를 체험하게 된다.
휘트니 미술관의 터커와 제임스 몬트는 《반-일루전: 프로세스/과정(Anti-Illusion: Procedures/ Materials)》이라는 전시를 기획하여 시간성과 관련된 매체인 영상, 음악, 움직임 등에 바탕을 둔 퍼포먼스에 집중하였다. 이 전시는 새로운 재료를 찾기 위해 고무, 철, 스티로폼 등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터커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젊은 작가들을 초대하여 당시로써는 매우 파격적인 전시를 기획하였다. 다른 파격적인 점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전시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또한 전시 디스플레이 방식에서도 이전과는 달랐는데, 작가의 아우라를 강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얼음을 이용해서 작품을 제작하여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도 하고, 작업하는 장소와 시간을 부각하여 장소와 시간에 더욱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시 공간의 변화
앨런 캐프로는 현대미술 잡지 『아트포럼(Artforum)』에 과정과 단단하지 않은 재료들이 중요해진다면 미술가들은 미술관과 갤러리의 사각형 구조인 화이트 큐브에 전시를 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1960년대 말에 일어난 새로운 미술의 등장은 이후 화이트 큐브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작가이자 평론가 브라이언 오토허티는 “화이트 큐브는 그 공간 안에 전시된 미술작품과 분리될 수 없다. 화이트 큐브는 시간과 사회적 공간이 예술작품의 경험에서 배제된 공간으로, 아무런 상황이 없는 장소로 인지되어 왔다.”라고 주장했다. 브라이언 오토허티의 이 발언은 장소 특정형 미술과 화이트 큐브에 의존하는 전시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작가들에게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뉴욕 현대미술관에서는 《공간(The spaces)》 전이 개최되었다. 이 전시는 화이트 큐브에서 벗어난 미술관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동시대성을 강조하였고, 작가들은 변형되는 공간을 연출하고 관객들을 작품 안에 위치하게 하여 다양한 체험을 유도하였다. 《공간》 전은 공간이 점점 중요해지는 1960년대 이후의 미술에서 미술가들이 미술관에서 주어진 장소에 대해 반응하고 연구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공간은 더는 순수한 조형적 장소가 아니라 정치적, 심리적(현상학적) 의미를 띠게 된다는 인식을 제기하였다.
20세기 시각문화를 제도적으로 규정해 온 두 공간은 미술관과 영화관이다. 미술관이 화이트큐브로 순수 예술을 대변한다면, 블랙박스인 영화관은 대중문화를 주도해왔다. 1960년대는 미디어 아트와 전시 공간의 변화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시기이다. 20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미디어 아트는 미술관과 영화관의 서로 다른 관람 환경 간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예술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화이트큐브는 스크린이 설치된 어두운 블랙박스로 빠르게 변해갔다.
브루스 나우먼의 작품은 3차원의 전시 공간에 개입하여 화이트 큐브를 평면들의 집합이 아니라 정육면체로서 활성화되게 하였다. 미술관의 전시 공간 전체를 예술적 대상으로 삼으면서 관람자가 응시할 수 있는 대상을 창조하기보다는 관람자를 그 대상 내부에 위치시켰다고 할 수 있다. 초기 비디오 아트의 이러한 특성은 현대미술이 보여주는 장소 특정적 경향이 미디어 아트의 실험과 연관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오늘날 전시장과 작품이 만나는 모습을 보면 화이트큐브에서 보였던 조화로움과는 달리, 작품과 전시장의 공간성이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그리고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간의 경계를 확장하고 다양한 감각 경험을 이끌어내는 관람자 중심의 전시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전시형태는 관람자들이 작품에 직접 개입하도록 유도하면서 더욱 다양한 체험을 제공한다. 또한, 기존 화이트 큐브에서 나타나는 물리적 공간의 제한이 아닌 자연적인 요소를 결합하거나 과학적 기술을 접목하여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전시형태를 보여준다.
앞으로는 관람자와 작품의 상호작용을 통한 체험형 전시가 더욱 많이 나타날 것이다. 이로 인해 향후의 전시공간은 새로운 가치의 공간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갈수록 전시장의 형태가 다양해지므로 관람자들이 미술작품을 가장 효과적으로 감상하고 의미를 얻을 수 있는 전시공간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정연심, 현대공간과 설치미술, 에이엔씨, 2014.
전영백,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들, 한길사, 2019.
박미예, 김광현, 「20세기 초 미술전시장 화이트큐브의 공간성 분석」,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계획계』, 2015.
김민지, 「셀스페이스로서의 전시 공간과 인터페이스」, 『조형미디어학』, 2014.
이미지 출처
1) <무제(세 개의 L자 빔)>
http://punkvanguard.altervista.org/art-weekly-robert-morris.html
2) <녹색 빛의 복도(Green Light Corridor)>
http://m.blog.daum.net/sam107/396?tp_nil_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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